“기독교서적의 공급과잉”은 왜?
대한기독교서회 서점이 수지타산 안 맞는다고 그만둬서 강북지역에서는 동묘 역의 ‘사랑방서원’이 제일 나은 곳이다. 물론, 서울 시청 인근에 더 작고 할인율이 더 낮은 역사깊은 곳도 있으나,..... 고객에겐 더 크고 더 책이 많고, 더 할인율이 높은 쪽이 좋아 보인다.
필자는 찬양을 들으면서 자꾸 공유하게 된다. 내가 은혜 받은 만큼, 다른 분에게도 권하여 ‘수요’가 더 생기면, 찬양 하는 분이 조그마한 힘이라도 생기길 앙망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과연 성경이 아닌 신학이론이나, 인간의 역사를 기록한 특정 판본의 교회사를 유교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원하셨을까? 성경의 하나님은 이거 읽지 마, 이거 읽지 마, 그래서 지성은 제껴나. 그러셨을까?
워낙,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공급과잉이기에, 하나님 앞에 죄 짓지 않기 위해서 공부 커리로, 평생의 과업으로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까지는 읽어봐야 하지 않나? 또 다음 세대에 신앙체험을 전해야 하지 않나?
결국, 신앙은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다.
전두환 때는 르네 월렉 워렌의 ‘문학의 이론’으로 신비평 중심으로 성경본문 이야기했다. 책이 없던 상황이 반영되고 시대적 한계가 엿보이는 측면이다. 이런 시대상황을 아는 사람에겐, 인간의 텍스트가 중심이 되는 것에서 매우 의문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한 만큼 전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하나님 원하시는 균형지점까지,.... 작은 노력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
그래야, 또 다음에 기독교지식인이 새 지식의 책을 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