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자기 무덤 판 건설사들 [왜냐면]
1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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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더 대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마감재도 훨씬 폼나게 적용한다. 반면 이를 견고히 지탱하고 유지해야 할 것들은 시공 단계에서부터 부실하다. 철근이 정상적으로 묶이지 않고, 콘크리트 타설도 순조롭지 못하다. 누수로 철근이 녹슬 수밖에 없는 구조물이 만들어지고, 마감재는 뒤틀리고 금이 가고 떨어진다.
이면에는 공사 기간의 부족, 감리역량 부실, 시공사의 기술력 부재, 전문건설사의 숙련공 미배치, 미숙련 외국인 과다 배치 등 여러 요인이 있다. 특히 숙련공 부족에서 오는 문제는 하루아침에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굉장히 우려스럽다. 숙련공 양성의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숙련공이 어떻게 양성되는지 조적공의 예로 살펴보자. 조적공은 시멘트 벽돌, 점토 벽돌, 블록 등을 쌓아 올리는 인부로, 현장에서 보조공 역할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시멘트 벽돌을 쌓으면서 손의 감각을 익히고 난 뒤, 치장 쌓기(점토 벽돌 또는 블록쌓기) 단계로 넘어간다. 보조공으로 재료의 소운반 및 정리 정돈을 거쳐야 기능공이 됐을 때 자신의 역할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이어 기능공으로 시멘트 벽돌을 쌓으면서 접착제 역할인 모르타르를 벽돌의 습윤상태에 따라 점도를 달리하여 까는 숙련과 벽돌을 평평하게 놓는 감각을 익히게 되며, 이 과정을 거쳐 치장 쌓기의 고숙련공 위치에 닿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판단하여 단계별 자리매김을 해주는 일이다. 숙련도와 생산성, 여기에 성실성까지 고려해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는 판단을 누군가 해주는 것이다. 과거엔 성장의 사다리를 통한 숙련공 양성이 전문건설사라는 생태계 안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전문건설사에서 이런 역할을 포기하고 만다. 언제부터인지 재료의 소운반은 전문 운반공으로 대체해 운반만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생기고, 숙련이 요구되지 않는 시멘트 벽돌쌓기는 숙련이 덜 된 내국인에게 한 장당 얼마에 내주거나, 값싼 외국인들 데려다가 대충 쌓고, 치장 쌓기는 숙련공 누군가에게 ‘이게 만원짜리 공사인데 천원은 나 주고 나머지로 네가 알아서 다해 줘’ 한 것이다. 이렇게 시스템이 단계별로 단절되어 숙련공 양성 생태계가 무너져 버리고, 품질도 엉망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전문건설사를 통해 치장 쌓기를 맡은 누군가도 이익을 위해 품 수를 줄이려 마구리(벽돌의 옆면) 바름을 빼먹고, 쌓는 장수 늘리기만을 독려한다. 여기서부터 숙련공이 지녀야 할 품질에 대한 책임은 사라지고 이익 볼 생각만 남게 된다. 이를 지켜본 전문건설사는 다음엔 같은 걸 구천원 짜리라 하고 팔천원에 맡아달라 한다. 이를 맡은 이는 또 철물을 설렁설렁 넣고 조이며 품 수를 줄이고, 급기야는 자신도 전문건설사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술집·골프장 갈 비용을 남기고 떼어 주기를 한다. 그래서 이젠 비숙련공이 물을 숭숭 먹는 벽돌에 지름이 4㎜ 철선이어야 될 것을 2.2㎜로 넣어가며 치장 쌓기를 한다.
이렇게 20~30년이 흐른 지금 조적 기능공들은 튼튼함을 담보할 마구리 찍어 바름 할 줄도 모르고, 철물을 대충 넣어도 되는 양 벽돌을 쌓고 있다. 본인들도 “지진 나면 버틸 수 있을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결국 건설사는 숙련공을 잃어 품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젠 필요해 데려오고 싶지만 숙련공이 많지 않아 애를 태울 뿐이다.
이런 현상은 철근콘크리트, 타일, 내장, 방수 등 모든 직종에서 다 똑같이 나타난다. 해서 재시공 또는 하자 발생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는 이미지 실추로 인한 일감 수주에 영향을 주고, 이익 감소로 적자가 나고, 심한 경우 회사 존폐까지 고민하게 한다. 지금 건설사들은 대부분 이런 어느 한 지점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해결해낼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공사를 저가에 수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 항변하지만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해도 삼십년 전 생태계를 복원하지 못하면 도돌이표가 될 것이 눈에 훤하다.
정부도 숙련공 양성을 위한 대안 찾기에 골몰하지만 그다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작 빌미를 제공한 건설사들이 뒷짐을 지고 있어서이다. 이 문제만큼은 건설사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 맞다. 분명 그들은 대안을 알고 있다. 단지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정부는 건설사가 이를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제도 마련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이를 팽개치고 숙련공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학원 사업에 돈 대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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