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 사회의 창시자이다.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해주었을 것인가? 그러나 이미 그 무렵에 사태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가진 최초의 감정은 자기 생존에 대한 것이며, 최초의 관심은 자기 보존에 대한 것이다. 땅에서 나는 생산물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으며,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게 되었다. 굶주림이나 그 밖의 다른 욕구들이 그에게 갖가지 생존 방식을 차례로 경험하게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기의 종을 영원히 존속시키는 방식이었다.
인간의 정신 속에는 크다, 작다, 강하다, 약하다, 빠르다, 느리다. 소심하다. 대담하다 따위의 어떤 종류의 관계에 대한 지각이 생겨났다. 이와 같은 발전의 결과로 얻은 새로운 지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동물에 대한 우월성을 자각하고 과시하게 만들었다. 점차 인간은 자신에게 유용한 동물들에 대해서는 주인이 되고 자신에게 해로운 동물들에 대해서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리하여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눈길을 보냄으로써 비로소 자존심이라는 것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존재의 서열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던 중에 인류라는 자기의 종이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일찍부터 개인으로서도 첫째라고 자부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사람들은 곧 진흙같은 것으로 그 오두막의 벽을 바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때가 바로 가족이 형성되고 구별이 생겨나고 일종의 소유 개념이 도입된 최초의 혁명기이다.
인간의 마음에 최초의 변화가 생겨난 것은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이 공동의 거처에서 함께 사는 새로운 상황의 결과였다. 함께 생활하는 습관은 인간이 체험한 가장 감미로운 감성이라 할 수 있는 부부애와 부성애를 낳았다. 이렇게 해서 각각의 가정은 상호간의 애착과 자유가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긴밀하게 결합된 하나의 작은 사회를 이루었다.
이제 모든 것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숲속을 유랑하던 사람들은 좀더 안정된 장소를 얻었으므로 점차 서로 가까워져 무리를 이루고 드디어 각 지방마다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여러 가지 개념과 감정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 인류는 점차 유순해지고 관계가 확대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라기보다는 매일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 얼굴이 잘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 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선호에서 한편으로는 허영심과 경멸이 태어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부러움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효모에서 생긴 효소가 마침내 행복과 무구에 치명적인 화합물을 생성시켰다.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평가하기 시작하여 존경이라는 관념이 마음속에 형성되자, 누구나 자기가 존경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예의범절의 의무가 미개인들 사이에도 생기게 되었으며 고의적인 범행은 모두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원시 상태의 사람들만큼 온순한 자들은 없었으니, 그들은 자연에 의해 짐승들의 어리석음과 문명인의 꺼림칙한 지식의 중간에 놓여 본능과 이성에 따라 자기를 위협하는 악으로부터 몸을 수호하는 것에 그쳤고, 타고난 연민으로 인해 해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으며, 남에게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해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자 로크의 격언과 같이 “소유가 없는 곳에 바르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시 상태의 무위와 우리 이기심의 극성스러운 활동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인간 기능 발달의 이 시기가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였음에 틀림없다. 이 시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러한 상태가 변화에 가장 덜 종속되어 있는, 인간에게 최상의 상태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단계에서 발견되는 모든 미개인들의 사례는 대개 인류란 항상 그 단계에 머물러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며, 그 상태는 세계의 진정한 청춘기이고, 이후의 모든 진보는 외견상 개인의 개선을 향한 진보로 보이나 실상은 종의 쇠퇴를 향한 발걸음이었음을 확인해주는 듯하다.
야금술과 농업이라는 두 가지 발명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낳은 두 가지 기술이었다. 그 어느 것도 아메리카의 미개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여전히 미개인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민족들도 두 가지 기술 가운데 하나만 사용하는 동안에는 야만인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이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빠르다고 말할 수 없어도 더 꾸준하고 풍부하게 문명화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철뿐만 아니라 밀도 유럽에서 가장 풍부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토지의 경작은 필연적으로 토지의 분배라는 문제를 낳았으며 일단 소유가 안정되자 정의에 관한 최초의 규칙이 생겼다. 각자의 소유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각자가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힘이 센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했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노동을 더 교묘히 이용했으며 재간이 있는 사람은 노동을 절감시키는 방법을 더 많이 고안해냈다. 경작자는 더 많은 밀을 필요로 했고 대장장이는 더욱 많은 철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많이 벌었고 어떤 사람은 간신히 먹고살았다.
자! 이제 우리 인간의 모든 능력은 발전하고 기억력과 상상력은 작용하기 시작했다. 자존심은 이해 관계에 눈뜨고 이성은 활발해졌으며 정신은 도달할 수 있는 한 거의 완성이라 할만한 정점에 거의 도달해 있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요소가 활동을 시작하여, 각자의 지위와 운명은 재산이 많고 적음이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과 아름다움, 체력이나 재주, 장점이나 재능에 의해서도 정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자질을 지닌 사람들이라여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 자질들을 실제로 갖추든지 적어도 갖고 있는 척이라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실체와 외관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별에서 위압적인 호사의 과시와 기만적인 책략, 이에 따르는 모든 악덕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인간이 이제는 무수한 새로운 욕구로 인해, 이를테면 자연 전체에, 특히 자기 동족에게 복종하게 되어, 결국 그는 그 동족의 주인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마침내 인간은 탐욕스러운 야심이나 진정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재산을 늘려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 때문에 서로를 해치려고 하는 옳지 못한 경향을 불러일으키고, 더욱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친절의 가면을 쓰기 일쑤이기에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은밀한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경쟁과 대항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의 대립에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숨겨진 욕망일 뿐이다. 이 모든 악은 소유가 낳은 최초의 결과이며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불평등과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이렇게 되자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편 부유한 자들은 남을 지배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자 다른 모든 쾌락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자들은 새로운 노예를 얻기 위해 기존의 노예를 부려 이웃 사람들을 정복하고 예속시키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고기맛을 한번 알게 된 굶주린 늑대가 다른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사람만 잡아먹으려 하는 것과 같았다.
비천하고 황폐해진 인류는 이미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었고 불행하게도 스스로 얻은 것을 포기할 수도 없었으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모든 능력을 남용함으로써 치욕만을 더하게 되어 드디어 스스로 몰락하기 직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