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에 일시적으로 제품 출하를 중단했다. 사진은 6일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의 LG전자 매장. [뉴시스]
홈플러스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로 선택한 기업회생절차가 되레 발목을 잡았다. 대금 미수 우려에 가전·식품업체들이 잇달아 납품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나섰다. ‘정상 영업이 가능하다’고 장담했지만, 업체 이탈이 확산하면서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향한 책임론도 확산하고 있다.
6일 LG전자·오뚜기·동서식품·롯데칠성음료 등은 홈플러스 납품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현재 매장에선 기존 납품한 물량만 판매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전국 126개 매장을 보유한 대형마트 납품을 중단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미수금 우려가 있어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대금 지급에 문제가 없다’며 납품업체 설득에 나선 상태다. 홈플러스는 현재 가용 현금 잔고(6일 기준)는 3090억원이며 한 달 순현금 유입액이 3000억원이라고 주장한다. 일반 상거래 채권을 지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해도 협력업체와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전액 변제된다.
하지만 납품업체들은 거래 조건 변경 같은 안전장치가 있어야 납품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현재는 1월 납품한 제품값을 2월 초에 받는 후 결제 구조다. 선결제로 거래 조건을 변경하려고 홈플러스와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습적으로 회생 신청을 해놓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으니 안심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MBK를 향한 시장의 불신과 먹튀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엑시트’(투자금 회수)만을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MBK가 10년 전 홈플러스를 사들일 때부터 인수 가격이 비싸고 차입 비중이 과도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금액은 약 6조원(기존 차입금 승계 제외)이다. 이 가운데 45%에 달하는 2조7000억원을 은행권에서 대출받아 조달했다.
과도한 차입금은 이후 홈플러스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유통 산업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이자 부담까지 커지자 MBK는 알짜 자산을 연이어 팔았다. 지난 10년간 폐점한 홈플러스 점포는 16개로, 여기에는 매출 상위권에 들던 경기도 안산점, 부산 가야점 등이 포함됐다.
시장선 “사모펀드 한계 드러났다” 특히 홈플러스 인수전에 6000억원가량을 투자한 국민연금까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수금액 6조원 가운데 70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인데, 여기에 국민연금이 6000억원을 투자했다. 현재 미지급 이자를 합한 RCPS 규모는 1조1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국민연금이 받지 못한 투자금은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개별 투자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서 투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업회생절차 신청 열흘 전인 지난달 21일에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도 두고두고 논란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이에 대해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CP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평소 매월 25일을 포함해 정기적으로 발행해 왔고 증권사에서 인수해 갔다”며 “기업회생절차도 28일 신용등급 하락에 따라 긴급하게 신청하게 된 것으로 사전에 예상됐던 상황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홈플 사태, 고려아연 인수전 영향 주목업계에선 홈플러스 매각이 난항을 겪으면서 MBK가 다급한 상황에 몰렸다고 본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당시 3090억원이던 영업이익(2016년)은 코로나19가 유행이던 2021년을 기점으로 적자로 돌아서 지난 3년 연속 연평균 2000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모건스탠리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홈플러스 기업형 수퍼마켓(SSM)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만 떼어내 매각하는 분할 매각을 추진했지만, 인수 후보자를 찾지 못했다.
MBK는 지난해 말부터 신용평가사에 ‘국내 유력 유통업체인 A사가 매입하려고 실사 중’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작 A사에서는 “실사는커녕 인수를 고려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신용평가사는 지난달 28일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고 기업회생절차 개시 이후 가장 낮은 ‘D’등급으로 강등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홈플러스 사태는 기업 성장보다 단기적 수익만 추구하는 사모펀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모펀드의 경영권 인수 시도가 늘고 있으나 부실기업 정상화 또는 효율성 제고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산업의 고유한 특성과 환경을 이해 못 하고 단순히 재무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홈플러스 사태가 MBK·영풍의 고려아연 인수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MBK가 시장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하게 되면 불리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현주·최선을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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