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의 저주…성수동 구두명장 1호, 56년만에 길을 잃다 [자영업자 울리는 임대 갑질]
1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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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 본 옛 터전은 낯설었다. 수십 년 전 이곳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개업한 유홍식 구두 명장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로 너머로 떠나야 했다. 전민규 기자
연무장길 주인은 구두장이였다. 2010년대 초만 해도 대림창고를 중심으로 한 그 길 양편으론 700~800개에 달하는 신발공장과 공방, 제화점 및 제화 부자재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자영업자 이재식씨가 “‘임대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임대 갈등이다. 자영업자는 대부분 임차인이다. 고공 행진하는 임대료를 속수무책으로 수용해야 하며 일부는 불법 갑질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거나 그게 싫으면 짐을 싸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성수동은 악명이 높다.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됐지만, 수혜를 본 이들은 건물주 등 소수다. 공연히 임대료만 덩달아 오를 뿐이었다.김영옥 기자
지난달 12일 찾은 연무장길에서 신발가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두세 곳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벌이가 뻔한 대부분의 제화업자에게는 너무도 비싸진 그 거리에서 가게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능력이 있어도 공간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팝업스토어 입점만 기다리면서 멀쩡한 공간을 비워두는 건물주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공급 부족→임대료 상승→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연무장길에서 밀려난 영세 자영업자들은 ‘성수동구길’이나 성수역 북쪽에 마지노선을 긋고 버티다가 그마저 사수하는 데 실패하면 경기도 외곽으로 튕겨난다.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그렇다고 그냥 나갈 수는 없었다. 권리금을 한 푼이라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6년 전 아픈 경험을 했다. 11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토대를 튼튼하게 다졌던 원래 가게 자리에서 무일푼으로 쫓겨났다.차준홍 기자
김씨는 모진 마음을 먹었다. ‘진상’ 소리를 들어가면서 무대응으로 1년을 버텼다. 또다시 발가벗겨져서 쫓겨나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건물주가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놓으면서 내건 임대료는 월 900만원. 후임자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김씨는 원상회복까지 해 준 뒤 간판을 내려야 했다.차준홍 기자
“건물주와 임차인이 서로 상생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현행법은 건물주만 살리는 법이에요. 건물주가 칼자루를 쥐고 우리는 칼날을 잡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어요.”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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