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의 자격시험 566명 응시… 작년의 20% 수준 - 14일 서울 노원구 삼육대학교에서 의사 전문의 자격 시험 응시자들이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시험엔 전년도 응시자(2782명)의 5분의 1 수준인 566명이 지원했다. /뉴스1
“세전 연봉 3000만원 미만, 시행 술기(시술·수술) 추가에 따라 인상 가능.”
최근 의사 전용 인터넷 구인 공고 사이트에 올라온 ‘피부·미용’ 분야 의사 채용 공고문이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근무하는 조건이다. 의사들 사이에선 “아무리 일반의라지만, 의사 월급이 월 300만원이 안 된다니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또 다른 피부·미용·비만 클리닉도 연봉 3000만~4000만원(세전)을 제시하며 의사를 구하고 있다. 역시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8시~오후 1시 30분 ‘풀타임’ 근무 조건이다. 최근 한 병원은 가정의학과·신경과·정신건강의학과 사직 전공의를 구한다는 공고를 하며 세후 월급 300만~350만원을 내걸었다. 연봉 3600만~4200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2월 의정 갈등 이후 이탈 전공의가 개원가에 쏟아지면서 일반의 급여 수준이 폭락하고 있다. 일반의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땄으나, 4~5년의 전공의 과정을 마치지 않아 전문의 자격은 없다. 반면 필수 의료 분야의 전문의 몸값은 크게 올랐다. 대전의 한 대학병원은 연봉 4억5000만원을 내걸고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모집 중이다.
◇구인난 필수의료는 연봉 4억 ‘몸값 천정부지’의정 갈등 이전인 지난해 초만 해도 피부·미용 분야 의사는 주 5일 근무에 월 1000만~1500만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의대를 갓 졸업하고,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은 일반의들도 이 같은 조건에서 일했다. 세부 전공 분야나 경력이 없어도, 월 1000만원 이상을 받고, 도시에서 일하는 의사라는 뜻에서 ‘무천도사(無千都師)’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처우가 급전직하했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의사가 취업 시장에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 나오니 급여가 하락한 것 같다”고 했다. 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정부가 협상 카드로 사직을 허용한 지난해 6월 이후다. 당시에는 취업을 하지 않고 관망하던 전공의들도 탄핵 국면 등으로 의정 갈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자 생각을 바꿔 최근 구직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픽=김현국
의정 갈등 전 국내에서는 매년 3000명 가까운 신규 전문의가 배출됐다. 그런데 지난해 의정 갈등이 발생하자 전문의 코스를 포기하고 수련 병원을 떠난 전공의(인턴 및 레지던트)는 1만2000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4600여 명은 일반의로 의료 현장에 근무하고 있는데, 상당수가 의원급 의료 기관에 취직했다. 이들의 영향으로 일반의가 급증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의원에서 근무 중인 일반의는 의정 갈등 전인 2023년 4분기 4073명에서 지난해 4분기 7170명으로 76% 증가했다. 특히 서울·경기만 놓고 보면 2083명에서 3916명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피부과 의원 등에 취직하려는 의사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급여가 크게 떨어진 동시에, 근무 조건도 깐깐해졌다. 의사 채용 시장 역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개원의는 “지난해 여름에도 전공의들이 취업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급여가 이전에 비해 200만~300만원 정도 줄었는데, 올 들어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전보다 나빠진 조건에도 인기 과에선 취업 문의가 쏟아진다”고 했다.
주로 보톡스·제모를 맡는 등 업무 강도가 세지 않고, 사고 위험도 거의 없는 피부·미용 계통은 구직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그러자 급여 낙폭도 더 커졌다. 한 피부과 의사는 “피부·미용 분야도 레이저 시술 등을 배우려면 몇 달 정도 걸린다”며 “적은 돈을 내걸어도 ‘일을 배우겠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임상 경험이 부족하고, 채용을 하더라도 병의원 내에서 사실상 ‘수련’을 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어 급여를 낮게 책정한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개원가 취업 시장이 저연차 전공의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지난해에는 고연차 전공의 상당수가 일반의로 의료 현장에 복귀했는데, 올 들어서는 저연차들이 본격 구직에 나서면서 그에 맞춰 임금 수준도 더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도 전문의 시험 응시자가 예년의 20% 수준인 566명에 그치는 등 일반의 구직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필수 의료 분야의 전문의 몸값은 치솟고 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은 연봉 3억5000만원 조건에 마취 전담 의사를 구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의 한 대학 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당직 전담 의사를 구하며 당직 1회당 세전 220만원을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