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尹 구속은 불법, 美에 알리겠다"…부정선거 음모론의 큰손 국내 최초 인터뷰
1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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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애니 챈(김명혜)은 1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19일 열리는 미국 보수 진영 최대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홍보 부스를 설치해 윤 대통령에 대한 불법수사와 탄핵의 부당함, 한국의 부정선거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이용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법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을 막으려는 속셈이 깔렸다. 보수의 신념이 왜곡된 전형적 사례다. 보수 진영이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부정선거’ 때문이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계엄이란 수단을 선택한 것뿐이라는 윤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챈의 영향력이다. 백만장자인 그는 한미 양국을 오가며 부정선거를 확산시키는 큰손으로 불린다. 그가 산파 역할을 한 여러 단체가 겹겹이 둘러싸며 호위하고 있다. 챈은 부정선거 주장의 선봉에 선 한국보수주의연합(KCPAC)의 설립자다. 이에 동조하는 예비역 단체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KAFSP) 이사장을 맡았다. 아울러 한미동맹USA재단(KUAUF)과 원코리아네트워크(OKN)를 설립해 단체 이름으로 한미 정계 인사들과 접촉했다. 무엇보다 그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 부정선거론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로비를 벌여왔다. 국내 일부 여당 의원들과 미국 보수 진영에서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한국과 미국에서 부정선거 주장이 왜 기승을 부리는지, 그 배후에는 누가 있는지 추적해왔다. 그 정점에 있는 애니 챈을 서울 종로구 KCPAC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챈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건 처음이다. 다만 본인 요청에 따라 음성만 녹음하고 얼굴 사진은 찍지 않았다.
챈의 주장은 아스팔트로 뛰쳐나간 부정선거론자들의 발언과 꼭 닮았다. 보수 정당이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정선거를 부인하는 사람은 공산주의를 서포트하는 사람이든가, 테크놀로지(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챈은 "엔지니어링 쪽에 몸을 담아본 사람이라면 금방 부정선거라는 답이 나온다"고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불법 정황이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부정선거 의혹들은 2022년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챈은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이들을 모아 단체를 만들고 플랫폼을 마련해줬다. 그 중 하나가 KCPAC이다. KCPAC은 미국의 연례행사인 CPAC과 유사하게 단체의 이름을 지었고 이 행사의 파트너를 자처하고 있지만 공식 연관 관계는 불확실하다.
KCPAC의 가장 큰 역할은 미국 조야에 부정선거 의혹을 퍼트리는 것이다. 2021년에는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백서 Election Fraud 2020을 출간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참여한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이 서문을 썼다. 챈이 CPAC을 통해 요청했다고 한다. 챈은 이렇게 미국 저명인사, 트럼프 대통령 추종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부정선거 의혹을 확산시켰다.
챈은 "ACU(미국 보수주의연합·CPAC 행사 주관 단체)의 맷 슐랩 의장도 선견지명을 갖고 부정선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 책을 홍보했다"고 주장했다. 맷 슐랩은 트럼프 1기 백악관 전략커뮤니케이션 국장을 지낸 머세이디스 슐랩 ACU 공동의장의 남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기 직전 서울 한남동 관저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맷 슐랩을 윤 대통령에게 소개했냐는 질문에 챈은 "그건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챈은 막강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한국와 미국에서 부정선거 주장을 확산시켜왔다. 1984년 남편과 반도체 관련 회사 ESS테크놀로지를 공동 창업했고, 하와이에서 부동산 사업을 통해 큰돈을 모았다. 그는 "16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며 "홍콩 출신 남편과 결혼했고 그의 집도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지만 무일푼으로 시작해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다. 챈은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감옥에 가는 신문 기사를 읽고 쇼크를 받았다"며 "남한의 경제 기적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데 갑자기 감옥에 끌려가고 탄핵이 될 수 있다니..."라고 당시 충격을 전했다.
한미 양국의 보수단체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를 묻자 "한국 언론들이 계엄과 부정선거 의혹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촉발한 태블릿 PC 보도,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 보도를 왜곡으로 규정했다.
그는 특히 김 여사에 대해서는 "딱히 친분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김 여사를 공격하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것과 똑같다. 나는 모국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미국에 정확하게 알릴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 정치인들이 저에게 흥미를 갖고 접근한 것이지 저는 어떤 모임에도 나간 적이 없다"며 정치적 목적이나 커넥션과는 거리를 뒀다.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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