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걸 좋아하는 과거 게임 개발자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고, 그 사이에 주식 게시판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요. 새로운 주주분들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주식 가격 형성 기준이 바뀌었다는 방증이겠죠. 제 기억으로는 펄어비스 주가가 3만 원 박스권에 머물렀을 당시의 주주분들 중에 꽤 많은 분이 4만원 대 구간에서 기관에게 익절을 하시고 떠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마 지금의 신규 주주분들의 가격대는 5만원 대에 형성되어 있겠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3만 원 박스권 주주들이 너무 오랫동안 고생했던 기억으로 인해, 급등이 발생했을 때, 성급한 익절을 하셨던 면도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안타깝게도 게임주, 바이오주 등 성장주들은 본인이 하차하고 나면, 다시 올라탈 기회를 거의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기차를 보고 나서 멘탈이 나가면, 다시 엉뚱한 가격에 사팔하면서 구간 이득도 놓치고, 손해도 쌓여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가는 상승 기회를 잡았을 때, 심리를 다잡아야 하고, 더 공부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 것은 이해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고생하신 만큼 수익을 더 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이 남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타짜’에서 고니가 했던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습니까.
‘한 다섯 배는 더 벌어야죠.’
주식은 당연히 도박이 아니지만, 지금 보다 펄어비스의 정보가 더 없고 게임성을 짐작하기 힘든 시기에 어떻게든 펄어비스와 붉은사막을 분석해 보겠다고 온갖 자료를 수집하고, 의견을 교환했던 분들이 고작 수익률 30~40%에 만족하시면, 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당연히 더 높은 곳에 ‘배팅’할 수 있는 힘과 배짱은 있어야 하고, 마땅히 더 높은 수익을 가져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식은 가격을 정해 놓고 하차하는 게임이 아니라, 내가 정해 놓은 회사의 목표에 하차하는 게임입니다.
1 인사이트
예전에 많은 분이 감사하게도 저의 글을 기대하고, 좋아하셨지만, 저는 특출난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와서 제 글을 읽어보면 맞는 내용도 있지만 틀린 내용도 많이 있으며, 다른 주주분들처럼 주식에 큰 비중이 실려 있다 보니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저는 그냥 과거에 게임을 개발했던 지식으로 상황을 예측하는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못합니다. 저는 제 인사이트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인사이트를 깨워주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이제 붉은사막의 게임성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얼마 남지 않은 출시에 앞서 제가 어떤 방향성을 말하는 게 별로 의미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냥 펄어비스나 붉은사막을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 정도로만 받아 들여주시면 됩니다. 원래 저는 저의 주관적인 주식 기록을 이런 식으로 많이 남겨 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맞는 말들은 흐뭇해하기도 하고, 틀린 부분은 반성하기도 합니다.
이제 프리뷰 영상과 본격적인 마케팅 형태의 게임 공개가 시작되는 2월이 되었고, 오늘은 이미 공개된 붉은사막의 정보를 바탕으로 제가 생각했던 붉은사막의 게임성을 수정함과 동시에,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의도로 글을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쓰는 내용은 어차피 프리뷰 3차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 주제인데, 저의 개인적인 게임성 예측이 다수 들어가 있어서 재미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프리뷰 2차보다 3차를 더 기대중입니다)
2 온라인 게임과 싱글 게임의 특징
일반적으로 MMORPG, 모바일, 콘솔 플랫폼은 모두 각각 다른 유저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 다 모두 좋아하는 진성 게이머가 아닌 한, 대부분의 유저는 한 종류의 취향에 치우쳐져 있는 경향이 있어서, 다른 분야의 장르를 잘 모르는 유저도 많습니다.
붉은사막은 원래 온라인 게임(MMORPG)으로 기획되어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펄어비스는 장르를 선회하였고, 지금은 싱글 플레이 유저를 타겟층으로 잡는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봤을 때, 펄어비스는 예전 검은사막이 피크를 찍던 시절, MMORPG 검은사막에 아주 강력한 서사적 몰입을 주입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에 펄어비스가 지향하는 세계관과 스토리를 검토해 보기 위해 검은사막 모바일을 좀 플레이해 봤습니다(원래 PC 검은사막을 해보고 싶었는데, 접근성 때문에 모바일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은사막M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자세히 보다 보면, 영웅적이고, 고어하면서, 다크 판타지의 느낌을 주고자 했던 시도가 많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각 세력의 대립과 가치중립적인 갈등 요소, 감정선을 다루는 시도들도 보이고, 플레이어 캐릭터를 세계관의 서사를 이끄는 중요 장치로 끌어나가는 시도가 이미 예전부터 충분히 드러나고 있더라고요. 이것은 모바일 게임치고는 꽤 진중하고 깊은 도전에 해당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세계관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한계성을 가집니다. 나와 같은 플레이어가 많다는 걸 인지하면서 플레이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관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없죠. 따라서 온라인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주인공 프레임을 아무리 씌워 봐야, ‘진짜 주인공’의 느낌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는 서사적 몰입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약점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죠.
또한 다른 플레이어와 끝없는 경쟁에 노출된 것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금 아이템 하나라도 더 뽑아야 하는데, 느긋하게 스토리를 읽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빨리 레벨업하고 돈 벌어서 상위 계층으로 도달해야 하는 구조는, 개발사가 의도한 스토리 컨텐츠의 대부분을 무시하면서 진행하게 되는 플레이 형태를 만들게 됩니다.
반면에 싱글 게임은 온라인 게임처럼 효율 플레이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다른 플레이어를 앞질러야 할 일도 없고, 일주일 쉬었다가 이어서 플레이해도 아무 문제 없죠. 세계관에 몰입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사실 온라인 게임은 싱글 게임의 장점을 가져가기는 힘듭니다. 물론 싱글 게임이 온라인 게임처럼 유저들이 만들어 낸, 역동적이고 리얼리티한 세계의 흐름을 느낄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싱글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이 가진 장점(동적인 사회)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어떤 게임이 될까요?
3 플레이 경험으로 세상을 움직인다면?
제가 예전에 GOTY를 언급하는 회사는 ‘게임이라는 틀을 비틀거나 파괴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트렌드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붉은사막이 서사와 관계의 다양성, 유저의 선택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의 변화 등을 짐작했던 적이 있고, 그걸 예전 글에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 붉은사막이 베일에서 조금 모습을 드러내었고, 여러 가지 공개가 된 인터뷰를 종합해 본 결과, 제가 생각했던 지향점과 펄어비스의 지향점이 꽤 달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가 현재 주목하고 있는 핵심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요새 붉은사막에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다회차 플레이가 필요하지 않은 게임 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이러한 개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밝혀진 인터뷰 내용과 정보로 인해 이것이 게임 시스템적으로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단 최근 붉은사막의 인터뷰와 정보의 내용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언급됩니다.
- 세력 관계, 상황 변화가 유동적이라는 점
- 플레이어 선택으로 길이 열리고 막히는 구조 가능성
- 엔딩은 고정되어 있다는 점
- 매일매일 플레이어는 플레이의 목적을 다르게 가져갈 가능성
- 플레이 중에 발생하는 상황(전황 변화, 관계 악화 및 고립, 즉흥적인 사건 개입)에 대한 임기응변
-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하지 않았다는 점’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과거의 많은 게임들은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이 엔딩과 연결된 형태를 가졌습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월드의 숨겨진 요소들을 찾아다니며 도감을 모으듯 플레이를 유도하는 형식이나, 또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하는 방식 등이 있겠죠. 그리고 그런 요소들로 유저들의 플레이 타임을 가져가는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그런데 붉은사막은 엔딩이 엄연히 존재하는 싱글 게임을 특성을 가졌음에도,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하지 않는 게임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중간 과정에서 겪는 플레이의 밀도가 아주 높거나, 계속 유저의 흥미를 자극하는 뭔가가 아주 풍부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는 엔딩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세력들의 관계 및 전황에 따라, 갈 수 있는 길을 못 가게 되거나, 하지 못했던 거래를 할 수 있게 되거나, 색다른 루트가 발견할 수 있음을 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플레이어 행동에 따라 실시간으로 세계 속에 존재하는 세력들은 계속해서 구도, 상황, 사회, 환경을 변화시키는 요인들도 생각해 볼 수 있죠. 이것은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들이 스스로의 목표를 정해서 세상을 흐름을 스스로 만들고 결정해 나가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처3, 폴아웃, 레데리2와 같은 기존 게임에서도 유저의 선택으로 세계관이 변하는 시스템이 이미 어느 정도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앞선 게임들은 그렇게 선택된 플레이어의 결정이 그대로 월드의 상태를 스냅샷으로 고정하게 되는 게임들이었습니다. 즉, 변화는 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은 번복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새로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다회차 플레이를 꼭 필요로 하게 되지요. 이것은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의미의 게임성이 아니며, 오히려 정해져 있는 게임성에 가까운 것입니다.
한 가지 곁다리로 살펴볼 만한 사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온라인 게임들이 많이 쇠퇴하게 된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근거들이 있겠지만, 치열한 플레이어 경쟁, 지긋지긋한 퀘스트 숙제, 너무 바쁜 일상으로 인한 호흡이 긴 컨텐츠에 대한 부담 등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의 많은 게임들은 단기적인 플레이 타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고, 상대적으로 긴 플레이를 해야 했던 RPG들이 버거운 진입 장벽으로 인해 외면받게 되었던 흐름이 있었습니다.
싱글 게임은 온라인 게임에서 문제가 되는 경쟁이라는 요소가 없지만, 개인적인 만족과 재미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진입 장벽이 존재합니다. 펄어비스는 월드에 소속감을 불어넣을 수 있으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자기 원인성’을 찾게 함과 동시에, 노가다나 숙제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붉은사막은 멀티 엔딩과 스토리 가지 치기로 인한 다회차 플레이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 그 대신 아주 풍부하면서도 ‘그때그때 정해지지 않은, 단기적이면서 순간적인 상황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 속에 유저를 오랫동안 던져두고 싶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 이 부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예견해 보고 있으며, 펄어비스가 온라인 게임(MMORPG)의 명가답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시간 월드의 동적 개념을 싱글 게임에 융합하려고 충분히 시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다회차 플레이 없이 명백한 서사의 끝이 있는 세계의 중간 과정에서, 계속해서 항상 새로운 세력과 구도, 새로운 경제 상황, 새로운 환경, 새로운 기회를, 오로지 나만의 플레이로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써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플레이어는 엔딩을 보기 전까지, 싱글 게임에 ‘접속’하는 기분으로 게임 세상을 오랜 기간에 걸쳐 경험 하게 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펄어비스가 이 시스템을 얼마나 고도화시켰는지에 따라서 앞으로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하는 고전 게임 형태를 종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펄어비스가 온라인 게임과 콘솔을 모두 정상급으로 소화할 수 있는 회사였기에 가능할 수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4 중요한 것은 고도화의 수준이다.
이제는 게임의 철학만 가지고는 GOTY를 받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 이상의 또 다른 뭔가가 있어야 게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일단 펄어비스는 붉은사막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굳이 엔딩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지?”
“왜 오픈월드는 항상 리셋과 다회차를 요구하지?”
펄어비스는 기존의 멀티 엔딩 중심 RPG의 관성에 질문을 던졌고, ‘끝없이 다양성을 가진 세상 속에서 한 번의 완결된 플레이 경험’이라는 새 기준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답의 밀도와 수준이겠죠.
지금은 누구나 새로움을 얘기하는 시대이지만, 완성도가 높지 않은 새로움은 허공 속의 메아리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틀 안에서, 유저들의 깊은 곳을 장악할 수 있는 완성도와 수준으로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새로운 시도는 좋았으나…’
or
‘이것은 게임의 혁신이다!’
혁신의 기준은 ‘퀄리티’이고, 어떤 개념이 패러다임이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그것이 우리의 피부로 와 닿아야 하는, 어느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펄어비스의 새로운 시도가 과연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지, 그리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 저는 그것을 기대해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펄어비스가 GOTY에 가까운 게임을 출시하여 한국 게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길 바랍니다.
모두 성투하시기 바라고, 저는 장기 투자를 위해 계속 게시판을 멀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끔 놀러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