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요구에 따라 1987년 개정된 헌법의 중요한 업적은 국회 권한의 강화였다.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은 강화됐고, 탄핵소추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가 완화됐다. 국정감사권과 예산심사권은 실질화됨으로써 국회는 강력한 행정부 견제 권한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특혜도 갖게 됐다. 국회의원은 탄핵도 소환도 당하지 않고, 회기 중에는 체포되지 않게 됐다.반면 대통령이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은 축소됐다. 국회 해산권은 삭제됐고, 비상조치권은 약화됐다. 입법안을 재의 요구하더라도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할 경우 법안은 확정된다. 제왕의 시대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1987 헌법’은 국회를 믿었다.대통령은 언제든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자리이니 견제를 받도록 만들었다. 타당한 귀납적 결론이다. 반면 국회는 예비 괴물로부터 핍박받는 곳이거나, 조종당하는 곳이었기에 더는 대통령의 바지 노릇을 하지 않겠노라 각오했다. 그래서 권한은 강화하고 특혜는 늘렸다.연역적 결론이었다.그리고 우리는 그 귀납을 지금 보고 있다. 국회는 자제하고 절제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국회도 괴물이었다. 다른 모든 직업군의 권한을 제거해 버렸다. 입법권에서 나아가 행정·사법권까지 좌우하고 있다. 그렇게 절대 반지화하고 있으니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오죽 클까. 한번 당선되면 선수(選數) 유지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다. 민생은 아랑곳없고 한 사람 바라보기 법안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입법 활동이다. 각종 비토로 정부 운영이 마비가 되는 것은 야당 의원의 업적이 됐다.대통령의 잘못은 잘못이고 계엄 파동으로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하는 것은 진정 국민들뿐인 것인지, 정작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들고 가면서 잇몸이 드러나게 웃고 있다.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이보다 좋을 수 없다.갈등으로 표를 구하는 자들이 독립기관의 구성원들을 임명하니 이제는 독립기관의 결정도 죄다 숫자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말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정말? 이 엄청난 분열과 이 끔찍한 마비가 진정 민주주의의 승리라고?그래, 대통령은 탄핵소추 심판을 받고 있고, 심지어 구속까지 됐다. 제대로 견제받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국회는? 이제는 20~30대 국민들마저 묻고 있다. 왜 국회의원들은 무슨 잘못을 해도 4년간 안전한가? 재판이 늦어지고 체포·구속도 피하고, 신분 세탁하며 세비까지 받아가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국무위원이 국회의원을 노려봐도 탄핵 사유라면서 왜 국회의원들의 그 미성숙한 언행들은 신성불가침인가? 국민의 대표라서 그렇다는 말 하지 마라. 그토록 경박한 국민들 많지 않다. 정답은 국회를 견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숫자를 줄이고, 세비를 줄이는 건 부차적이다. 국회도 견제받아야 한다. 중선거제로 민심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비례대표 대신 양원제를 실시해 법안과 탄핵소추안을 자체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국무위원 탄핵소추 의결 조건을 엄격하게 변경하고, 각종 기관에 대한 임명 권한도 줄어야 한다. 불체포특권도 사라져야 한다. 오래된 선거 문구를 또 패러디하겠다.문제는 국회야,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