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의회가 한국 등 동맹국에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을 두고 국내 조선업계의 수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한화오션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화오션이 지난해 미 해군 함정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인수한 필리조선소의 역할에 힘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필리조선소의 재무 상태까지 감안해 제2의 망갈리아 조선소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타주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리 상원의원과 존 커티스 상원의원이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한 이후 국내 조선업계에서 미해군의 군함 건조에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두 법안이 미국의 동맹국이 자국의 군함 건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다. 작년 실적이 좋은 데다 미 해군이라는 크고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성장 기대감까지 더해져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군함 건조 실적이 견조한 조선사의 주가가 최근 가파르게 상승했다.
다만,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의 필리조선소를 두고 법안이 실제로 통과되면 인수의 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신중론이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미 해군 함정을 동맹국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연방 현행법을 개정하는 게 핵심 골자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나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에 있는 조선소에서 미 해군함정 건조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 조선소가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소유가 아니란 것을 미 해군 사령관에게 사전 인증 받아야 하고, 건조 비용이 미국 내 조선소보다 저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두 의원의 법안 개정안을 보면 현재 미 해군이 운영하는 함정수는 291척으로, 준비 태세 유지에 필요한 355척보다 많이 부족하다. 이 같은 공백을 해소하는데 들이는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동맹국 조선소를 적극 활용하자는 게 법 개정의 주요 취지다. 조건을 맞추면 한국의 조선사들이 미군함 수주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조선업계는 법안 발의를 크게 반기는 상황이다. 미국과 비교해 인건비가 낮아 선박 건조 비용 또한 저렴해지는 데다, 기술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어 수주전에 참여해 대규모 군함 건조의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업계 일부에선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국 상선 및 방산 시장 진출의 일환으로 한화시스템과 40대 60의 비율로 금액 1억 달러(1440억원)를 들여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바 있다. 인수는 12월 말에 최종 완료됐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 국내보다 선박 건조 비용이 3배 가량 높은 데다 필리조선소는 선박 건조 설비도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안이 통과된다면 미국은 비용 등을 고려해 자국이 아닌 동맹 국가에서 건조를 하도록 할 가능성이 큰데, 필리조선소가 과연 한화오션이 기대하는 만큼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필리조선소는 2018년 이후 6년간 적자를 기록,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부채비율도 4946%에 이를 정도로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 한화가 필리조선소 인수에 투입한 자금이 그룹의 규모를 고려할 때 절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현지에서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 같은 재정 상황이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화오션노동조합은 필리조선소 인수 당시 "득보다 실이 많은 투자로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자칫,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때 인수했던 망갈리아 조선소와 같은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망갈리아 조선소는 지난 1997년 대우조선해양이 루마니아 회사를 인수해 설립한 조선소로, 당시 대우조선해양에선 망갈리아 조선소의 생산을 정상화하고자 인적·물적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손실 누적 등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들어갔고, 결국 대우조선해양에선 망갈리아 조선소를 당시 인수 금액(5300만달러, 약 450억원)가량의 절반인 239억원에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필리조선소는 단순히 군함을 지을 수 있는 조선소가 아니다"며 "중소형 상선 위주로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상선 외에 MRO나 방위산업도 계획하는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으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필리조선소 인수가 망갈리아 조선소 인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망갈리아 조선소 때와) 상황이 다르다"며 "당시는 8년간 수주를 잘 이어오다가,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세계적으로 조선업계가 전부 어려워졌던 시기였다. 그리고 (대우조선해양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때라 자구안으로 모든 것을 매각해야 했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려와 달리 미국 현지기업이 갖는 장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결국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도 미국 의회에서 이러한 법안이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과 동맹국에 있는 조선사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반면 필리조선소는 현지에서 건조해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과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에 맞는 지역 경제 활성화, 취업 채용 등도 분명히 있다"고 파악했다. 이 관계자는 "긴 호흡으로 볼 때 후 필리조선소의 활용 방안은 다양하게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아름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머니투데이방송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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