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핑, 일본 파리게이츠 등의 골프웨어 브랜드를 유통하는 크리스에프앤씨가 차입금 돌려막기에 나섰다. 골프 호황기였던 2021~2022년 발행했던 전환사채(CB)와 교환사채(EB)를 갚기 위해 300억 원 규모 CB와 EB를 새로 찍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2030 사이에 골프 열풍이 불자 당시 크리스에프앤씨는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고금리·고물가 속에 소비가 위축되고 해외 여행도 재개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골프 인구가 줄고 골프 시장 성장세는 꺾였다.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 좀체 반등하지 못하자 기관 투자자들은 만기 전 원금 회수를 선택했다. 현재 주가 수준에선 CB나 EB를 주식으로 바꿔도 시세 차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키움프라이빗에쿼티(키움PE)는 만기 전 조기 상환 청구권(풋옵션) 행사가 가능해지자마자 원금을 빼기로 한 것으로 관측된다.
크리스에프앤씨는 7월 말 20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와 100억 원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차환용 자금 조달이다. 3월 말 기준 1·4회차 CB와 2·3회차 CB의 미상환 잔액은 533억 원이었다.
200억 원 규모 5회차 CB엔 마스트파트너스(마스트-애큐온신기술사업조합)가 가장 많은 액수인 106억 원을 투자했다. 시너지아이비 상생혁신 신기술투자조합도 32억 원을 투자했다. 만기 이자율 3%로, 2~3년 전 무이자로 CB를 발행했을 때보다 자금 조달 비용이 비싸졌다. 주식 전환가액은 7869원으로, 주가가 그보다 내려갈 경우 전환가액을 최저 5509원으로 낮추는 리픽싱(주가 하락으로 인한 전환가액 조정) 장치도 적용됐다. 크리스에프앤씨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2021년 11월 키움PE(키움크리스 제이호사모투자합자회사)를 대상으로 200억 원 규모로 발행한 1회차 CB와 2022년 8월 미래에셋증권, BNK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200억 원 규모로 발행한 4회차 CB를 상환하는 데 쓸 것이라고 밝혔다.
6회차 EB 발행을 통해 조달한 100억 원은 2021년 11월 2회차 EB 발행을 통해 키움PE로부터 차입한 100억 원을 상환하는 데 쓰인다. 6회차 EB의 교환 대상은 자사주(보통주)로, 이를 위해 크리스에프앤씨는 지난달 31일 자사주 127만809주를 주당 7869원, 총 100억 원에 처분했다. 마스트파트너스(마스트-애큐온신기술사업조합)가 54억 원, 시너지아이비 상생혁신 신기술투자조합이 16억 원 규모로 이번 교환사채를 인수했다.
◇키움PE, 주가 차익 못 내고 원금만 조기 회수하는 듯
키움PE는 조기 상환 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키움PE는 조기 상환 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 산하 키움PE는 창업자 부부(우진석·윤정화)인 최대주주 측 지분(40%) 외에 가장 많은 17%가량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9월 장외매수로 200만 주를 주당 4만 원(총 800억 원)에 매입해 지분 17%를 취득한 후, 곧장 CB·EB 투자로 300억 원을 추가 투입했다. 키움PE가 크리스에프앤씨에 300억 원을 투자했던 2021년은 코로나 팬데믹 중 많은 MZ 세대가 골프장으로 몰려갔을 때다. 당시 크리스에프앤씨는 표면 이자율·만기 이자율 모두 0%란 유리한 조건으로 CB와 EB를 발행할 수 있었다. 사채권자는 만기까지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으로 들고 있을 경우 이자 수익 없이 원금만 되돌려 받는다. 키움PE로선 주식 전환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야만 수익을 내는 구조다.
키움PE는 2022년 11월부터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었으나, 당시 크리스에프앤씨 주가는 뚝 떨어져 2만 원이 깨진 상태였다. 주가 하락을 반영한 최저 전환가액(3만975원)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키움PE는 발행일로부터 3년이 지난 다음 달 20일부터 1차 풋옵션 청구가 가능해지자, 풋옵션 행사 의향을 밝힌 것으로 관측된다.
크리스에프앤씨는 지난해 10월 액면가를 1000원에서 500원으로 낮추는 주식 분할을 단행했다. 유통 주식 수를 늘려 주식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액면 분할과 리픽싱에 따라 1회차 CB의 전환가액과 2회차 EB의 교환가액은 1만5488원, 3회차 EB의 교환가액은 1만4753원, 4회차 CB의 전환가액은 1만7037원으로 조정됐다. 이달 2일 종가는 7470원으로, 4회차 CB 전환가액보다는 50% 이상 낮은 상태다. 현재 주가에선 CB나 EB를 주식으로 전환해도 차익을 챙길 수 없다. 사채권자들은 이자 한 푼 없이 채권으로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손실을 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