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바이오는 최진호 석좌교수의LDH나노소재벡터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 상업화로 영위한다. 이 원천 기술로 첫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비타브리드라는 화장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시장의 거센 저항으로 빛을 본 곳이 일본 현지였다. 비타브리드의 성공으로 회사는 항암제로 목표를 상향한다. 암정복에서 가장 미정복 분야인 췌장암을 타겟으로 고형항암제인 도세탁셀을 개량한 폴리탁셀 개발에 역량을 쏟아 붓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사태가 발생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모든 제약사나 연구기관이나 대학연구소까지 이 코로나 정복에 사활을 건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중국과러시아들은 이 코로나정복을 패권전쟁으로 간주하여 코로나 개발 국가 동원령을 내려 사활을 건 승부를 하게 된다. 현대바이오도 전세계 보건 위기와 국가적 위기에 동참 하여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사명의식 속에 씨앤팜이 자체 기술을 바탕으로 치료제 개발에 나서게 된다. 제2의 주력 사업이었던 폴리탁셀은 잠시 미뤄 둘 수밖에 없는 주변 정황 이었다. 씨앤팜은 한국파스퇴르 연구소의 치료제 후보군중 제 1호보였던 니클로사마이드를 주목하게 되었다. 여러 적응증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그동안의 의학계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약물로써 개발이 안되었던 이유인 흡수율과 반감기를 해결하면 치료제 개발 기간을 단축시켜 코로나를 종식 시킬거라는 목표아래 연구진들은 개발에 착수 한다. 그리고 마침내 60년의 난제를 풀어내는데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범용항바이러스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미국은 mRNA백신에 지질나노 전달체로 일약 그 기술을 상용화 시켰다. 제프티는 LDH나노소재벡터 기반으로 성공하여 그 기술에 대한 ICH회원국들간의 규제 정립을 서두르게 하여 작년에 드디어 규제화를 이루게 되었다. 지질나노소재 규제는 미국이라는 선진국이 주도하였기에 무난하게 그들의 자원으로 규제를 이루었다. 우리나라는 제프티를 개발하고서야 규제를 만들다보니 공백기가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규제 당국의 늑장 행정의 피해를 보게 되었다. 4월25일 정부는 [첨단바이오 이니셔티브]를 수립 하여 발표 하였다. 어찌보면 제프티가 22년 대선만 아니었다면 규제당국 공무원들의 직무 연속성이 계속 흔들리지 않고 주력했다면 어땠을까?하는 그런 생각도 하곤 했었다. 현대바이오는 어찌보면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위대한 제프티는 꿈에도 개발하여 성공 못시킬수도 있었다. 개발과정에서의 여러 어려움과 개발하여 성공한 후의 또 다른 어려움이 앞길에 펼쳐졌지만 회사는 끊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자체 승부를 걸어 드디어 빛을 보는데 가시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는 화이자의 첫 의료 제품인 페니실린과 버금 갈것이다. 화이자를 글로벌 제약사를 우뚝 서게 한것이 페니실린 이었다. 그 당시 판매가는 20달러(현 물가상승로 보면500달러로 추정)이었다. 미국정부와 화이자의 첫 인연은 바로 페니실린 대량생산에 협력 공조였다.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고 있었다. 수많은 군인들이 전선에서 병과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다. 페니실린이 무엇보다도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페니실린 생산량은 너무 적었다. 페니실린으로 임상실험 한 다음 그 환자의 소변에서 다시 그 균을 회수할 정도로 귀했다.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기업에 SOS를 보냈다. 제약회사와 화학회사들에 페니실린 대량생산을 호소하고 나섰다. 물론 현상금도 내걸었다. 바로 이때 화이자의 케인이 나섰다. 딥 발효 공법으로 페니실린을 만들어 보겠다고 제안했다. 화이자 본사에서는 처음에 망설였다. 그 당시 주력 제품 구연산 생산 차질을 우려했던 것이다. 미국은 화이자가 만든 페니실린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한 병사들에게 보냈다. 페니실린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사기충천하여 노르망디를 함락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화이자는 담방 돈방석에 앉았다. 화이자가 일약 세계 최고의 제약업체로 오르는 데에는 페니실린의 공이 지대하다고 할것이다. 화이자의 비아그라는 소 뒷걸음 치다 쥐잡았다고 할 것이다. 그 원료인 실데나필은 고혈압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임상실험 과정에서 엉뚱한 부작용이 보고됐다. 발기현상이 잇달아 나타난 것. 그 부작용을 놓치지 않고 발기제로 만들어냈다. 우물을 파다 노다지를 캐낸 격이다. 1998년의 일이다. 화이자는 이 비아그라로 벌떡 일어섰다. 이렇게 보면 신약개발은 주변 환경의 영향이나 또는 우연치 않게 개발과정에서의 다른 변수로 신약을 개발하여 제품화하는데 성공한다. 지금의 모더나도 코로나라는 전세계 격변이 없었다면 글로벌제약사로 우뚝 설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바이오도 어찌되었든 코로나 사태가 있었기에 제프티를 만날수 있었을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혁신적인 약물이 그런 격변의 흐름속에 탄생된다는 역사적 사실은 때론 우리 인간의 타고난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하는 잠재된 본능 때문이 아닐까? 내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제프티 신봉자는 변함없이 탄생하는 그 날까지 계속 이어나 갈것 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