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기업과 행동주의펀드, 국민연금공단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부름에 한 자리에 모였다.     할 말이 많았던 그들의 대화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길어지며, 첨예한 입장차를 방증했다.
          ◇주총서 대립한 행동주의·기업·국민연금의 만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8일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기업과 주주행동주의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주주행동주의 측에서는 트러스톤, KCGI, 안다, 얼라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참석했다.     기업 및 유관단체에서는 KT&G, DB하이텍, 신한금융지주, JB금융지주, 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대한상공회의소가 동참했다.  
   이날 참석한 JB금융과 얼라인파트너스는 불편한 동행을 하는 사이다. 지난 주총에서 JB금융과 2대 주주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사회 구성을 두고 표 대결을 벌였고, 그 결과 얼라인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2명이 새 사외이사로 낙점됐다.     치열한 표 대결로 주총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만큼 주총 직후 열렸던 이사회에서도 현안이나 비전에 대한 논의가 원활하지 못했던것으로 전해진다.     DB하이텍은 KCGI의 행동주의 캠페인 대상이 됐던 회사다. 작년 3월 KCGI는 DB하이텍의 물적분할 과정에서 일반 주주들을 배제한 채 의사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주주 이익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지분 7.05%를 취득하며 주주행동주의를 개시했다.
     지난해 말 DB하이텍이 배당 성향 증대, 자사주 매입 확대 등을 담은 경영혁신계획을 발표하고 KCGI와 지분 거래에 합의하면서 두 기업의대립은 일단락됐다.     소유 분산 기업인 KT&G는 행동주의펀드의 단골 표적이자 국민연금도 관심을 갖는 곳이다. KT&G 경영진이 뚜렷한 주인이 없는 기업을 사유화한다는 게 행동주의펀드에서 나오는 지적이다.     2006년 월가를 대표하는 행동주의자 중 하나인 칼 아이칸이 KT&G에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고 지난해와 올해는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경영에 관여하고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법개정·공시강화 요구한 행동주의 vs 이해 요구한 기업     이날 간담회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본인들의 생각을 한명씩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주행동주의 측에서는 상법 개정과 공시 제도 강화 등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가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은 주주행동주의가오랫동안 요구해온 내용이다. 상법 개정이 되면 알짜 자회사 물적분할, 위험 신사업 추진 등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될 경우 이사를 상대로 소송이 가능해진다.
     공시 제도도 더 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일본거래소그룹(JPX)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자기자본이익률(ROE) 중장기 향상 목표 공시 등을 권고하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너무 심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자산 재배치라든지 너무 낮은 ROE의 개선 필요성과 함께 법과 제도에 관해서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각 기업에 대한 얘기보다는 각자의 애로사항을 공유했다"고 부연했다.     반면 기업 측에서는 안정적인 사업 영위도 주주 보호정책만큼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양승주 DB하이텍 부사장은 "반도체업의 경우 대규모 장기투자, 신속한 의사결정 등이 필요한데 최근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대규모 지역보조금을 주는 분위기"라면서 "특히 반도체 중에서 시스템 반도체는 벤처기업만큼 키워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년 벤처기업 차등의결권이 도입됐듯, 노이즈 없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장치들을 허용해줬으면 한다"면서 "가처분신청 자료 요청 부분도 좀 더 구체적이고 특정적으로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에서는 수탁자책임 관점에서 균형 있게 의견을 표현했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기업과 행동주의펀드에 바라는 바를 양쪽에 모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복현 원장이 모두발언에서 밝힌 내용과 유사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원장은 주주행동주의 측에는 단기수익만 추구하는 무리한 요구보다는 기업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장기 성장 전략을 제시하도록 힘써달라고 요구했다.  
   기업 측에는 스스로 주주가치 제고에 힘쓰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주주의 정당한 요구에는 주주와 적극적으로 소통해달라고 당부했다.     차종현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국민연금은 행동주의펀드에는 장기적인 관점을, 기업에는 주주의 가치가 침해되는 내용이 없는지 법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큰 의미가 있다"며 "하나의 아젠다(의제)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