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기술특례] 성장한 기술특례 기업, ‘이것’ 달랐다
입력2024.04.12. 오전 10:01
수정2024.04.12. 오후 1:02 기사원문
성장성과 기술력이 있지만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자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도입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96%의 기업이 상장 당시 제시한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4곳 중 3곳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기술특례기업의 81%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퇴출을 유예해 줘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문제를 짚어봤다.
원자 현미경 제품 개발 전문업체인 파크시스템스는 2015년 기술특례상장 방식으로 코스닥시장에 등장했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은 461억원, 순위로 보면 866위에 불과했다. 9년이 지난 지금 파크시스템스의 위상은 달라졌다. 시가총액은 1조1900억원으로 25배 넘게 증가했고, 코스닥시장 순위도 44위까지 올라섰다.
파크시스템스는 상장 이듬해부터 흑자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이후로도 실적은 개선세를 이어갔고, 지난해 매출 1448억원, 영업이익 276억원을 기록했다. 상장 후 9년 만에 영업이익이 10배 넘게 늘었다. 기업공개(IPO) 때부터 강조했던 산업용 현미경 투자도 결실을 봤다.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정에 첨단 계측 장비가 필요한데, 파크시스템스는 나노 단위 계측을 위한 원자현미경을 공급 중이다.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기업 대다수가 실적과 주가 모두 부진하지만, 성장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곳도 있다. 이들 기업은 상장 때 내세웠던 기술을 공모자금으로 더 고도화하고, 상장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굴했다. 투자자에게 사업 정보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 기업 199곳(스팩 합병 제외) 가운데 현재 주가가 공모가보다 4배 이상 오른 곳은 파크시스템스를 비롯해 레인보우로보틱스, HLB제약, 알테오젠, 석경에이티, 레고켐바이오 등 6개사다.
우선 IPO로 조달한 자금을 계획대로 집행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석경에이티는 상장하면서 공모자금 총 99억7800만원을 2023년까지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등에 쓰기로 했는데, 지난해 말로 모두 투자를 마쳤다. HLB제약과 알테오젠도 공모자금 투자 일정을 지켰다.
신사업 발굴도 적극적이었다. 석경에이티는 상장 당시 중장기 사업으로 제시했던 이차전지 전고체·전해질 소재 사업과 관련한 액체 없이 양극재와 전해질 사이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