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책임성
올해 신세계의 정용진 회장은 부회장에 오른 지 18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룹 쪽은 이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 회장이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5년간 신세계의 주가는 59% 하락했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신세계의 주가는 20% 하락하면서 시장에서는 그의 오판과 무능이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총괄회장은 평소 인사에 있어 ‘신상필벌’을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는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 경영 실패의 책임은 전문경영인들이 감당한 반면, 오히려 정 회장은 영전했다. 그리고 신세계는 창사 이래로 최초 희망퇴직을 받는다. 무능은 재벌총수의 몫인데, 일자리를 잃는 것은 평범한 이들이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의 승진은 세습된 특권세력인 총수일가의 경영상의 무책임성이 낳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자신의 가족만 빼놓고 모두에게 엄격한 재벌 총수. 이와 유사한 사례는 다른 재벌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재벌 총수가 경영에 책임지는 경우는 그룹 자체가 몰락하여 강제로 축출되기 전까지는 드물다. 경영능력은 세습되지 않는다. 유능한 재벌총수에게도 무능한 후계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문제는 무능함 자체보다 무능한 경영진이 책임을 지지 않는 철옹성의 재벌의 지배구조에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앞장서서 재벌 총수 일가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순자산 가치 대비 주가가 낮은 것이 지배주주의 무능이나 사익추구가 아니라 높은 상속세 때문이라며 세율을 손보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세상은 재벌에게는 멋진 신세계일지는 몰라도, 국민 대다수에게는 부조리한 세계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