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구석탱이 변방에 고립된 부대가 다 그렇듯이 우리대대도 존나게 을씨년스러웠음.
그리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풍기는 부대가 다 그렇듯 괴담이 여럿 있었는데
탄약고 2계단 밑 김일병, 저주받은 K2, 3사로 200M귀신
이렇게 셋이 대대 전체에 공공연히 떠도는 괴담이었음.
우리 부대에서 탄약고 투입하는 중대는 우리중대 하나였는데
이유는 4개 중대중 3개 중대는 GOP에 로테이션으로 투입되고
후방지원으로 늘 대대에 남아있는 우리 중대가 탄약고를 맡기로 해서 그런거였음.
그만큼 탄약고 경계 인원도 존나게 없어서 이등병 병아리 견장 떼면 즉시 탄약고 투입됐었는데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가끔 3교대 떨어질 정도로 지옥같은 환경이었음.
나도 병아리 견장 떼자마자 탄약고 투입됐고 첫 탄약고 근무는 그래도 널널하게 4교대 나왔음.
첫근무 마치고 왔더니 왕고 둘이 또 우리 이등병새끼 처음으로 탄약고 근무 섰다고 신나가지고 썰풀이 신나게 하더라고.
예전에 뭐 탄약고에서 자1살한 사람이 있다더라
저번 무슨 훈련때 대항군한테 탄약고 털린적이 있는데 그것때문에 가끔씩 작전과장이 포복으로 기어와서 근무자 조지는 경우가 있다
사령 7중대장이면 진심 조심해라 그새끼 완전 싸이코다
그렇게 신나게 썰풀다가 왕고 한명이 존나 뜬금없이
"아 맞다 새벽 3시 근무투입할땐 조심해라"
라고 말함.
"잘못들었습니다?"
"뭘 잘못들어 새끼야 새벽 3시에 근무투입할땐 조심하라고"
"죄송합니다. 왜 조심해야하는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안개끼는날이 있어."
뭔소리지 싶고 내가 또 질문을 하면 왕고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까 싶어 혼신의 대가리 굴리기중인데
옆에 다른 왕고가 끼어듬
"야야 이새끼 그거 볼라면 어차피 1년은 남았음."
"하긴 임마는 동기도 없으니깐 못보고 전역할수도 있겠다"
뭔소린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궁금한채로 얼타고있으니깐 둘이 번갈아가면서 부연설명을 시작하더라고
"상병 이상이 탄약고 투입할때 새벽 3시 넘어가면 안개가 심하게 끼는날이 있다."
"한명만 상병이어도 안되고 두명이 다 상병 이상이어야 돼."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 겪었는데 오줌지릴뻔 했거든."
난 뭔소리지 싶었음 안개가 끼는게 뭐가 그리 무섭다는건지
"안개가 엄청 막 무서울 정도로 심합니까?"
"이건 겪어봐야 알거다ㅋㅋㅋ 야 씨1발 이새끼 표정봐 ㅋㅋㅋ 안믿는다ㅋㅋㅋ"
"신병이 존나 빠져가지고 ㅋㅋㅋ 하늘같은 왕고말이 조스로 들리나보다? 엎드려 새꺄ㅋㅋㅋㅋ"
엎드려서 계속 들었음.
"안개가 존나 무섭다. 니가 지금 뭘 상상하든."
"뭐 그건 겪어보면 알건데 그것보다 무서운건 기침소리지."
"기침소리 들려도 뒤돌아보지 마라. 아는척하지도 말고."
그땐 그냥 왕고새끼들 신나서 신병 겁주기 하고있구나 싶었음.
그리고 한참 후, 그 왕고들 집에간지 한참 되고, 그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기는 커녕 이름도 가물가물해질 때쯤
나는 상병 3호봉, 내 맞후임은 갓상병을 단 채 둘이 탄약고 근무를 투입하게 됐음.
근무 첫날은 그냥저냥 노가리 존나게 까고 지금 왕고새끼 뒷담화랑 소대장 뒷담화 까면서 시간죽였는데
둘쨋날에 새벽 3시근무가 있었음.
아무 생각 없었음. 이등병때 들었던 새벽3시 근무투입할때 조심해라같은소리는 이미 한참전에 까먹었거든.
이전까지 새벽3시 근무도 신물나게 투입됐었고.
그리고 투입하고 딱 10분이 지나고 그때 왕고들이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나버림.
물론 내가 기억하려고 해서 기억해낸게 아님.
이미 한참전에 망각해서 쓰레기통에 넣어뒀던 기억이 강제로 끄집어내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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